
▲시애틀 라디오한국 임직원과 WAKB회장 방문단이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시애틀 라디오한국 최에녹 국장과 이수빈 아나운서, 서정자 사장, WAKB 회장인 김명전 GOODTV 대표이사, 이인선 본부장, 박정훈 국장. ⓒ데일리굿뉴스
오늘의 한류 콘텐츠가 이른바 ‘K-컬처’로 세계 주목을 끌게 된 것은 1998년 김대중 정부의 일본문화 개방이 발단이다. 일본 대중문화 유입을 전격적으로 허용함으로써 한국문화의 세계 진출 장벽을 무너뜨린 것이다.
한류가 본격적으로 부상한 것은 한국 미디어 산업의 성장을 바탕으로 2000년대 초반, 한국드라마가 세계인의 인기를 끌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0년, 당초 외세문물의 범람으로 한국이 문화식민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를 말끔히 씻고 ‘K-컬처’라는 이름으로 세계 문화시장을 휩쓸고 있다. 그 중심에 한류의 전도사 역할을 묵묵히 감당한 약 80여개 해외 한인 방송사가 있다.
해외교민 800만 시대, 전세계에는 이들을 대상으로 모국어 방송을 하는 한인방송사들이 있다. 2005년 전세계 한인 방송인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정보 교류를 통해 해외 교민사회의 화합과 발전에 공헌하기 위해 미국 뉴저지에 본부를 둔 WAKB세계한인방송협회(이하 WAKB)가 창립됐다.
2019년 김명전 회장이 취임한 이후, 이사회 결의를 거쳐 2020년 10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KCA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으로부터 사단법인 세계한인방송협회 최종 설립 허가를 받게 된다. 한국정부의 사단법인으로 등록이 허가된 것은 모국과 해외 한인방송사를 연결하는 공식적인 창구가 열렸다는 의미다.
팬데믹으로 묶였던 발이 풀리면서 한인 방송사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WAKB도 활동을 재개했다. GOODTV-데일리굿뉴스가 WAKB와 합동으로 그 현장을 탐방하는 기획 취재를 연재한다.
미국 북서부의 아름다운 녹색도시 시애틀, 라디오한국을 찾았다. 시애틀 라디오한국 서정자 사장에게 왜 한국어 방송을 시작했느냐고 대뜸 물었다. 판사였던 아버지가 6·25 때 납치된 이후, 1960년대 미국LA로 이민을 왔다. 그는 “첫 한국어 방송을 시작할 때, 제일 처음 애국가를 틀었고, 그 방송을 들은 모든 교민이 울었다”며 당시 애청자들로부터 이민자로서의 어려움과 향수가 밀려와 감동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우리는 늘 친정 떠난 딸의 심정으로 한국을 짝사랑하는데, 모국은 우리를 여전히 버려 두는 것 같다”고 서운한 심정을 드러내며 당시를 회고했다.
시간을 돌려1960년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이민을 떠났던 1세대 이민자들을 위해 해외교민을 대상으로 그리운 모국의 소식을 전해주는 친구, 모국어 라디오 방송국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미주 한인 교민사회는 교회를 중심으로 이뤄진 공동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일반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방송사들도 새벽시간과 주일에는 설교방송을 편성해 교민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탐방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전세계 한인방송사의 상황이 매우 어렵다는 느낌부터 들었다. 방송 기술이 디지털화되고, 정보의 소통이 모바일과 인터넷중심으로 바뀌면서 해외 한국어 신문사가 거의 문을 닫았다. 아직 전세계 12개국에 80여 한인방송사가 남아 있지만 교민사회가 갈수록 침체하고 있어 고군분투하는 상황이다.
최초 24시간 한국어 라디오 방송 시작시애틀 라디오한국은 서정자 사장이 1997년 이주하며 개국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라디오한국은 워싱턴주 18만 명의 한인 교민 뿐만 아니라 워싱턴주 페드로웨이 지역의 유일한 라디오 매체다. 라디오한국의 서정자 사장은 1965년 12월 12일 LA에서 해외 최초로 한국어 방송을 시작했다.
서 사장은 “당시 한국정부에서 일본 기업체의 요청으로 일본 방송을 도와준 적은 있어도 이제껏 한국어 방송을 도운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가수 이장희 씨를 고용하면서 최선을 다해 방송을 했지만, 공중파 대여 에어피(송출비)를 낼 수 없어서 7군데를 쫓겨 다녔었다”고 회고했다.
심각한 재정난 속에서도 이민자들이 감사하단 편지와 함께 보내온 적은 후원금이 너무 귀해서 방송을 그만둘 수 없었다고 한다.
1997년 국내 IMF가 시작되기 직전, 기회가 왔다. 시애틀로 이주해 라디오한국을 개국했다. 이 때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로부터 라이센스를 취득하면서 미국 내 한인 라디오 방송국 중 자체 채널을 소유한 유일한 방송사가 됐다(미국은 정부가 공중파 주파수 사용에 대한 승인을 하는 한국과 달리 공중파 주파수를 개인이 소유하고, 사고 팔 수 있다. 대부분은 한달에 많게는 수십 만 불을 받고 대여만 하면서 이익을 챙긴다).
1997년 10월, 시애틀 라디오한국은 203마일(326km)로 송출되는 KSUH 1450AM과 KWYZ 1230AM 두 개 채널로 매일 24시간 방송을 시작하게 된다.
호기롭게 시작하기는 했지만, 역시 해마다 8만 불씩 적자를 면치 못했다. 장비까지 팔았지만 역부족이라 사채까지 썼다. 그럼에도 방송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 그는 “해외 한인방송사는 교민들에게 대한민국을 알리고 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며, “마음에 쌓인 이민자의 애환을 담아 애국자로 만든다”고 답했다. 그렇게 지켜온 한국어 라디오 방송이 올해로 57년 째다.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에서 한국인 이민자를 대상으로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는 사업자들끼리 돌파구를 찾고 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모임을 결성했다. 공중파 주파수(AM, FM)를 사용해 라디오 방송을 하는 사업자 7곳이 모여 미주한인공중파라디오연합회(Korean American Radio Network)를 설립했다. 회원사들끼리 소통하면서 협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뾰족한 수가 없어 답답하다고 한다.
서 사장은 “해외 한인 방송사들은 K-POP열풍 이전에도 한류콘텐츠 확산에 기여했고, 한국정부의 소식을 전하며 동포들의 긍지를 살리고 미국과 한국 교민사회의 커뮤니티 창구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로 너무나 힘겹던 시기에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며, “그런데 한국정부는 팬데믹을 맞으며 모든 광고가 끊긴 지금도 여전히 관심이 없다”고 토로했다.
한국정부 차원의 대외홍보 대책에서 해외 한인 방송사의 역할과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WAKB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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